
1.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2. Tonight, Tonight
3. Jellybelly
4. Zero
5. Here Is No Why
6. Bullet with Butterfly Wings
7. To Forgive
8. An Ode to No One
9. Love
10. Cupid de Locke
11. Galapogos
12. Muzzle
13. Porcelina of the Vast Oceans
14. Take Me Down
저쪽 블로그에 쓰려다가, 너무 악다구니를 풀어놓게 될 것 같아 이 한 장에 대한 감상에 섞어서 배출하기로 했다.
이 앨범의 예전 리뷰 :
http://cdrack.egloos.com/424246 (060516).
이런 생각만 벌써 한 10년도 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갈이가 너무 안 된다. 후각이 지나치게 예민했던 어느 애 아빠의 자살, 그래 매혹적이라는 건 인정한다. 나도 그 인간에게 빠져서 정신 못 차리던 시절이 있었고, 90년대의 아이들(물론 90년대생이 아님)이라면 안 그런 녀석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대안을 찾았고 새로운 것을 원했던 90년대의 아이들이라면, 정말 그래선 안 된다. 그 아저씨 본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우상화에 15년씩이나 빠져서 헤매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은 우리들 중 상당수가 진심으로 신봉했던 그런지를, 얼터너티브를 단순한 패션의 하나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후각은 예민했으나 머리는 감지 않았던 그 아저씨가 15년이 돼가는 지금까지도 진지한 회고의 대상이나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단순히 촌스러운 옛날 음악으로 전락해버렸다면, 그건 전적으로 팬들의 신성화 때문이다. 나름 팬이었던 입장에서 진심으로 비난하고 싶다.
머리를 감지 않는 머리 냄새 페티쉬 의증의 그 아저씨 음반도 꽤 가지고 있고, 거기에 관해 하고 싶은 말들도 나름 있는 사람이지만,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음반들은 입에 담기가 힘들다. 솔직히 나에게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좀 지난 일이지만 어느 치기 어린 밴드가 공중파 방송에서 이 아저씨의 곡을 연주했는데, 연주가 개판이라고 난리가 났었다. 난 무서웠다. 90년대에는 그 아저씨가 자기 머리 냄새에 취해 연주를 개판치고 카메라에 가래침 뱉는 것을 보며 진정한 록스피릿이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나. 물론 실력이 딸려서 안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럼 뭘 원한 건가? 뛰어난 연주실력으로 원곡을 그대로 카피하는 것이야말로 90년대의 우리들이 그토록 저주했던 80년대 메탈키드들의 제1 기준 아니었나. 세상의 얼치기 마니아들이 다 그런 소리를 해도, 적어도 90년대의 아이들인 우리들만큼은 그래선
절대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유독 더 하게 되는 시즌이 있다.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년에 한두 번씩, 그때마다 한두 달씩 속이 갑갑하고 분통이 터진다. 그러던 차에 꿈에서 Tonight, Tonight이 들렸고, 차에 이 씨디를 꼽고 길을 나섰다.
보통 펌킨스의 앨범들은 초반에 세 곡 정도를 엄청 달려주는 편이다. 사실 이것은 록밴드 앨범의 정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빌리 코건이 부치 빅에게서 배운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앨범, 2CD로 돼 있다보니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 그래도 호흡을 조금 가다듬어 주기 위한 7번을 제외하면, 2번부터 9번까지 있는 힘을 다 해 두들기고 달리고 때려 부순다. 인털류드의 느낌이 나는 10번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11번이 돼서야 보통 한 장짜리 앨범의 느린 곡 나오는 타이밍을 찾는다. 9번까지에는 대형 히트곡만 세 곡이 배치돼 있고, 하나 같이 펌킨스 특유의 드라이브감과 공격성이 담겨 있는데,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Jellybelly와 Here Is No Why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주목할 트랙들이라 생각한다.
Jellybelly는 손쉽게 치면서도 역동적인 리프를 구성할 수 있는 D-Drop의 새 지평을 여는 리프라 해도 좋겠다. 메탈적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장식을 가득 우겨 넣은 리프가 '얼터너티브=연주 못함'이라는 내외적 고정관념을 짓밟아준다. 이것은 8번의 Fuck You (An Ode to No One)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Here Is No Why는 가사에서도 죽은 애 아빠 고추만 만지고 있는 팬들을 노골적으로 비웃어주고 있다. 얼터너티브의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대곡 취향도 노골화됐다. 물론
Siamese Dream (1993)의 Silverfuck도 대곡이었지만, Tonight, Tonight이나 Porcelina of the Vast Oceans을 보면 개념이 다르다. 차라리 전작 중 Soma나 Geek USA를 더욱 장황하게 펼쳐놨다는 느낌이랄까. (전작 분위기와 통하는 중급의 대곡들은 두 번째 디스크에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Zero나 Bullet with Butterfly Wings도 단순한 구조를 최대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음악적으로 펌킨스 본연의 정수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Muzzle이나 Here Is No Why 정도. 지나가는 얘기지만 Muzzle을 닮았으나 raw한 분위기에 집착했던
Zwan은, Jellybelly 노선은 너무 무거워서 피한다 쳐도, Here Is No Why 같은 노선으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마침 이 디스크를 들고 나간 날은 딱 가을 날씨면서도 의외로 포근해서, 창문을 열고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 더 크게, 더 크게 듣고 싶은데 창문을 닫고 있자니 덥고, 간선도로에서조차 옆 차들 때문에 소리도 키울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도 갑갑했던 마음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더라. 이 장황한 두 장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 첫 장은, 단연
포스트 그런지의 프로파간다라는 느낌이다. 해묵은 우상화 그런지에 Here Is No Why로 사정없이 조롱하고 침을 뱉으며 Fuck You (An Ode to No One)으로 모두 때려부순 뒤 그 파편까지도 잘게 밟아 으깨는 듯하다. 훌륭하고 완성도 있는 곡들이 두 번째 장에도 많이 있지만 히트 싱글이 앞 장에 몰린 것도, 실은 그런 의지를 담은 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3년 전의 앨범이다. 이렇게까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부수고 뒹굴고 침을 뱉어댔는데도, 아직까지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질들만 남은 것 같다. 정말,
90년대의 우리들만은 그러면 안 된다. 진짜 Iscariot는 누군지 생각 좀 해보자. 내가 굳이 얼터너티브의 애티튜드를 신성화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하나는 정말 진심으로 너무 지겨워서 그렇고, 또 하나는, 그래도 세상에는 변화의 팩터들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음악에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음악 좋아한다고 까부는 것들이 꼴 보기 싫어서 그렇다. 나로서는 아직까지 머리 냄새 나는 의처증 아저씨가 어쿠스틱 기타 잡은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회고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작은 관심이나마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안정환도 아닌데, 너희들 때문에 음악이 이 꼴이야, 라고 해줄 수도 없고.
커트 코베인 신도들, 다 죽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