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CD를 한장씩 한장씩.
by 퍼프
전자양 - 숲 (2007).
1. 만나서 반갑습니다
2. 비행선
3. 당분인간
4. 봄을 낚다
5. 나와 산책하지 않겠어요
6. 무신론자의 가스펠 Pt. 1
7. 카운트갓
8. 무신론자의 가스펠 Pt. 2
9. 소다팝
10. 여름밤 히치하이커
11. 열대야
12. 여름의 끝
13. 슈퍼 사운드 커뮤니케이션
14. 유에프오 플레이그라운드
15. 플래쉬백
16. 미니카
17. 핌
18. 난파
19. 겨울밤 정전
20. 홀리엔드

엠파스에서 이글루스로 옮겨와 처음으로 쓰는 글. 원래 새 글은 이삿짐 다 풀면 쓰려고 했는데, 이거 뭐 끝이 보여야지. (사실 뭐 안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5번의 '나와 산책하지 않겠어요', 11번의 '열대야'는 왠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라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보니 1집을 낸 이후로 벌써 6년이라고 한다. 아마도 공연장에서 들어봤던 것 같네. 오래되긴 정말 오래됐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전자양의 첫 앨범은 말하자면 골방소년의 우울한 몽상이었다. 조금 미묘했던 것이, 전자악기를 많이 쓰는 것 같지 않은데 어딘가 일렉트로하면서 로파이한 질감이 몽롱함을 더했더랬다. '포크적인 무엇'에 지향점을 둔 문라이즈에서는 언뜻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정체성에 잘 맞았다는 느낌. 그런데 이번 앨범은 모든 것이 반대인 것 같다. 계속해서 깔리며 곡을 리드하던 어쿠스틱 기타는 전면으로 나서면서도 하나의 '포지션'으로 역할이 제한되었고, 전자악기와 일렉트로한 방법론이 훨씬 전면으로 나선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밝아졌다'.

변신, 혹은 성장을 반기는 사람들도 있고, 어이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내 경우는 전자. 지나치게 긴 축에 들어갈 6년의 시간 동안의 성장이 확연히 보인다. 골방에서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기고 혼자 고민하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당당함이 있다. 조바심양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열심히 고민하고 손을 본 흔적도 느껴지고. 성실하게 고민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침이 없는, 아티스트의 주요덕목이다.

밝아졌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전자양은 원래 어두운 음악이 아니었다. 4번의 '봄을 낚다' 같은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도 특히 달콤한 축에 드는 것 같지만, 이런 트랙이야말로 1집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곡 아닐까. 우수가 주조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세상을 등지고 우울 속에 빠져서 허덕이는 그런 건 아니지 않았나. 철저히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몽상하는, 말하자면 도시적인 정서 같은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여자애들 홀리려는' 가사들이란 식의 얘기도 있던데, 글쎄.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경우는 원래부터 좀 그랬던; 부분이 2집에서부터 노골적이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각 거리에서 친구들과 농담하며 웃고 있다고 해서 그 둘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뭐하다. 똑같은 농담을 하더라도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경우는 원래 '여자애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타입이고, 전자양의 경우는 '사회성이 넓어진 골방소년'에 가깝지 않을까. 난 이번 앨범이 1집에서의 퍼스널리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속도 깊어지고 사교성도 좋아진 느낌인데.

훌륭하게 성장하셨네요.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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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프 | 2007/07/18 01:41 | 트랙백 | 덧글(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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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쓴귤 at 2007/07/18 02:13
안그래도 저도 전자양 좀 써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퍼프님이 쓰신 글이 제 느낌하고 아주 많이 닮아서 또 즐거웠어요. 아유. 좋아라. 퍼프님 글.
Commented by 퍼프 at 2007/07/18 03:01
쓴귤/ 아닌게 아니라, 6년만이란 말이 귤님의 양파 리뷰에도 나와서 흠칫; 했었답니다. 힛. 첫 리플 영광입니다~
Commented by CIDD at 2007/07/18 06:03
헉, 밸리에서 보고 전자양도 전역했겠네~ 생각했는데 어느새 6년이었군요. 이야 시간이란게 참..
Commented by 퍼프 at 2007/07/19 01:05
CIDD/ 전역한지 아마 꽤 되었을 거예요^^
이 블로그의 글들 옮기면서도 '1년 전에 쓴 글들이었네' 하고 있자니
여러모로 요즘은 시간이 무섭군요.
Commented by 맥스 at 2007/07/20 00:17
저도 이 음반을 얼마전에 받아서, 요즘 많이 듣고 있는데...
제가 감상한 느낌과도 비슷하네요.
벌써부터 그의 다음 음반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퍼프 at 2007/07/20 02:59
맥스/ 맥스님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발빠르게 챙겨 듣고 계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요. 으흣. 저는 "다음 앨범이 혹시 엄청 엉망이면 어쩌지?" 하는 기분, 참 간만에 느껴봅니다. ;)
Commented by at 2007/07/20 21:43
사회성이 넓어진 골방 소년.이라는 평 만으로도 전자양 좋네요.
와~
Commented by 퍼프 at 2007/07/21 08:12
진/ 으흐응.. 골방소년이 좋은 건가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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