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CD를 한장씩 한장씩.
by 퍼프
Utada Hikaru - Exodus (2004).
1. Opening
2. Devil Inside
3. Exodus '04
4. The Workout
5. Easy Breezy
6. Tippy Toe
7. Hotel Lobby
8. Animato
9. Crossover Interlude
10. Kremlin Dusk
11. You Make Me Want to Be a Man
12. Wonder 'Bout
13. Let Me Give You My Love
14. About Me

참 기품있고 우아한 앨범이다. Exodus '04의 묘한 에스닉함도 매력적이고, Hotel Lobby의 댄서블함도 좋고, Kremlin Dusk와 Animato의 화학약품 같은 매캐함도 훌륭하다. 이런 앨범을 만들어내는 우타다 히카루인데 일본에 있는 소속사는 부도 위기라고 한다. 하긴 First Love를 부르던 우타다 히카루니까,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판매고가 반, 반, 반...으로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것도 같은데.

유럽반에는 보너스트랙 2~3곡이 들어있고, 앨범커버도 다르다. 사실 저 커버 상당히 마음에 안 들어서 유럽반을 살까 하다가, 보너스트랙이라고 해봐야 싱글에 실렸던 리믹스들인데다가 트랙 배열이 굉장히 다르다. 심지어 제목도 Opening인 1번 트랙이 마지막으로 가 있다든지 하는 건.. 아니 뭐 보너스 트랙을 중간에 넣으면서 전체적인 조율을 한 결과겠지만, 좀 개그스럽지 않아?

앨범 아트웍에 포함돼 있는 녹색 배경의 사진이 커버보다 10배는 좋다. 크리스탈 케이스 겉에 씌운 종이커버가 뭐 이렇게 두껍나 했더니, 조그만 포스터도 한 장 접혀 들어가 있고, 오이뮤직의 스폰서 광고지도 한 장 더 들어가 있고, 그래도 일본가수 앨범이라고 가사번역지도 들어있다. 번역은 하려면 좀 잘 하지 이게 뭐니. 영어는 일본어보다,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보기만 해도 번역 잘 못한 티가 확 나는 언어인데 말이다.


2004년 11월 3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
일본 가수의 로망은 언제나 미국시장 진출인지도 모른다. 국내에서는 SM이 몇년 내로 미국에 아시안-뭔가-파운데이션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하니, 동양 가수의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따지고보면 제3세계는 다 똑같을 지도 모르고, 영미권을 제외한 전세계, 혹은 미국이 아닌 모든 나라가 똑같을 지도 모르지만.

우타다 히카루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타이트한 목소리, 유려한 영어 발음, 수더분한 외모, 웰메이드한 PV, 뭐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묻는다면 단연 송라이팅과 애티튜드를 꼽겠다.

물론 송라이팅이 우타다 히카루의 미덕이라고 할 때는 '전곡을 작사작곡하는 실력파' 류의 찬사가 아니다. 송라이팅의 퀄리티를 이야기하는 건데. 무리 없이 흘러가면서도 작사 작곡에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어레인지에도 여러가지로 머리를 많이 쓴 느낌이 들고. 그것을 뒷받침할 엔지니어링이야 '뭔가 그럴듯하게 소리를 뽑아내는' 재주는 고무로의 전성기 때부터 일본 레코딩의 특징이라 해도 좋을 법하니.

그런데 일단 내가 일본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타다 히카루의 신보가 나오기 전에는 신곡을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항상 새 앨범을 들어볼 때마다 조금씩은 당혹스러워진다고 해도 좋겠다. 신보가 나올 때면 전일본의 hmv를 뒤덮어버리는 초대형 가수의 앨범이라고 하기엔 너무 귀에 선 음악들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은 것이다. 워낙 일본인들은 뭔가 이상한 것을 많이 구매한다는 인상이지만, '이런 음악으로?'라는 기분을 지우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름대로 가장 놀랐던 것은 가 나왔을 때였는데 사실 이번 앨범은 더하다. 마돈나가 개척한 '메인스트림 속의 클럽 뮤직 디바' 시장을 노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이상한 음악 참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듣고 있기가 어딘지 불편하고 찜찜했다.

놀라운 건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만 듣는 사람도 우타다 히카루의 앨범을 꼬박꼬박 산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이름이 갖는 힘이 상당히 작용한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데, 바로 그것이 우타다 히카루의 미덕이다. 이름값이 높아서 미덕이란 게 아니고, 음악으로 번 돈을 충실하게 음악에 투자하고도, 자신의 높은 이름값을 또 아티스틱하게 투자하는 애티튜드이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야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다 똑같다고 치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마음 놓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우타다 히카루는 일단 판이 팔리니까 마음껏 표현해내고, 그런 판을 사는 모험을 한 청자에게는 공을 들인 좋은 음악으로 보답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만용이나 객기라 부르지 않는다. 만용과 좋은 음악이, 객기와 대중의 진정한 환영이 충분히 거리가 있다는 것은 음악 세계에 널린 수많은 예로 알 수 있다. 우타다 히카루는 참 좋은 아티스트이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의 앨범으로 몰고간 것 같은데, 잘 듣고 있으면 상당히 좋은 앨범이다.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만큼 전형을 벗어나려는 재치있는 편곡이 무척 매끄럽게 잘 소화돼 있고, 멜로디 라인도 은근히 캣치하다. 다만 어딘지 "자, 너희들이 곧잘 침 흘리는 동양 여자애야"라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는 조금만 참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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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프 | 2006/07/17 13:25 | Album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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