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Ekue Ekue
2. Green and Blue
3. Deep Weather
4. Bohemian Ballet
5. Deep Folk Song
6. Freedom Cry
7. Cafe Europa
8. Forest Power
9. Hunting
10. Forest Hymn
11. Sweet Lullaby
12. Madazulu
저번에 번역했던 플레이보이TV 방송에서 플레이메이트들이 플레이보이를 보고 매료되었다고 토로한다든지, 일본 식의 고딕/롤리타 스타일이라든지 하는 경우들을 보면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든다. 자신과 다른 것에서 매력을 느껴서 변신하고 싶었다든지, '나도 저런 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하는 동경과는, 뭐 잘 모르지만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그냥 섹시하고 매력적인 것을 동경하여 외모를 가꾸는 1차적인 자기만족과는 다른, 타인의 욕망과 시선을 한번 거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섹시한 여성에게 여자가 매료된다든지 하는 경우와는 좀 다를 것이다.
그런 방향성을 가진 욕망이 꼭 불건전하다든지, 욕망에서 자아가 소외된다든지 하는 생각까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문제 있는 엑조티즘의 대표주자 나비부인을 (물론 타의로) 배출한 바로 그 일본인들이 엑조티즘을 유난히 선호한다는 것은 조금 기분이 묘하다. 자신들이 소비된 바로 그 방식으로 타인을 소비하는 것은, 어쩌면 (내 생각에서만큼은 철저히) 계급사회인 일본의 수직성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냥 돈이 많고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다양한 문화생활을 풍족하게 즐기고 있을 뿐인 것 같기도 하고, 딥포레스트가 그때 일본에서 어디 유명 CM에 음악이 삽입됐다든지 한 걸 수도 있고.
1999년, 2000년 정도에는 딥포레스트의 음악이 그렇게 듣고 싶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할 수가 있어야지. 용케 종로의 어느 가게에서 수입반을 한 장 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핏 나는 기억에는 가격이 18000원인가 그래서, '수입반인데 이렇게 싸다니!'하는 기쁨까지 있었더랬다. 라이브 앨범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에스닉한 일렉트로니카라고만 생각했던 딥포레스트가 라이브에선 이렇게 퓨전재즈 필이 가득 날 줄도 전혀 몰랐다. 나는 화려한 코러스 톤의 신스 리드가 난무하는 타입의 퓨전재즈가 트로트보다 싫다. 내 머리 속에서 딥포레스트의 청아하고 아름답던 이미지는 이때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93.1Mhz KBS FM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콩가를 두들기며 선량한 백인을 절대 살해할 것 같지 않은 아프리카 음악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화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아프리카 음악을 섞어 넣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 같다. 스튜디오 앨범은 확실히 매료되기에 충분한 작품 같았다. 그런데 라이브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퓨전재즈 밴드의 라이브 같은 진기명기 풍 솔로 타임도 나오고 뭐 이러다보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작곡과 연주를 하는 두 멤버는 이름을 보면 아무래도 프랑스인 같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인 듯한 사람들은 게스트 보컬로 표기돼 있거든. 라이브에서 분위기 띄우고 그러려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것 가지고 시비를 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구할 수 없는 딥포레스트의 음반을 몇 달이고 사고 싶다가 겨우 건진 한 장이 하필 이런 분위기의 라이브라 속상해서 비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때부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낯선 보컬이 신비감을 자아낸다는 컨셉 자체가 회의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간혹 중요한 가사는 불어나 영어로 나오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고, 그게 효과적이라서 그렇게 썼을 것이고, 아프리카에 불어 쓰는 나라들도 많으니까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 딥포레스트의 두 사람은 아프리카 음악에 머리는 정통하고 가슴은 전념하며 원주민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게다가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신장이식 수술까지 해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거라면 나 지금 굉장한 실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바이오그래피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근데 괜히 기분이 미묘하다.
일본인들의 엑조티즘 취향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이 괜히 주절거렸었는데, 나는 유럽이나 영미권의 아티스트들이 일본에서 라이브를 하고 라이브 앨범을 내고 하는 것도, 가끔 아주 까칠한 기분일 때는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본에만 가고 한국에 안 와서 그런 것도 없다고는 못 하겠다만서도.. 딥포레스트가 굳이 일본에서 라이브를 하고, Japan이란 단어가 들어간 앨범을 두 장이나 냈다는 것이 참 미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얘기하지만 내가 이때 하필 이 라이브 앨범을 사지만 않았으면 이런 생각 전혀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일본에는 왔다 갔구나, 부럽다, 일본'하고 말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엑조티즘을 포장해 팔아먹는 유럽인이라는 식의 삐딱한 시선이 한번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일본에서의 라이브 앨범을 낸다는 것이 이들에게 "세상의 끝까지 우리의 음악이 알려졌다"는 깃발 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의 라이브 앨범을 내는 여러 해외 아티스트들에게 이런 식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게 된 것도 이 앨범부터였던 것 같다. 생각할 수록 악연이었구나.
하지만 일본인들의 엑조티즘 취향은 단순히,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충분히 갖게 해주는 사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살고 있으니 (역시나 엑조티즘적인 시각에서) 일본을 좋게 보고 그러지, 일본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나도 그랬을 것 같다. 소피스티케이티드한 음악이나, 야생의 적응력 떨어진 도시의 집고양이가 등을 곧추세우고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메탈음악이 주지 못하는, 원초적인 힘 같은 것을 어쨌거나 맛은 볼 수 있으니까. 현대 문명 사회가 답답하다느니, 나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느니 하는 소리 입에 달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에 던져 놓으면 당장 생수와 샤워기, 월풀욕조, 인터넷 같은 것을 찾아 눈에 불을 켤 사람이 대부분인 게 사실이니까. 우리들은 모두 도시의 집고양이들이다. 바깥 세상은 그냥 동경의 대상으로,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내다보다가, 비둘기에게 괜히 심술 한번 부려보고 하는 정도가 차라리 편하다. 이 앨범도, 아무리 나쁘게 보더라도 거기까지는 유효한 것 같다.
정규반을 따로 한 장 가지고 있고, 거기엔 안 들어있는 좋은 곡들도 있다. 그리고 뭐, 듣고 있으면 원래 곡 자체가 예쁘고 힘도 있어서 좋다. 그래도 괜히 들을 때마다 스킵 버튼을 몇 번씩은 누르게 되는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을 사는 게 아니었어.